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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표 이야기

'티파니 블루', '에르메스 오렌지': 색깔만으로도 상표가 될 수 있을까?

by Life&Law 2025. 8. 23.

 

특정 색깔만 봐도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나요? 민트색에 가까운 하늘색 상자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, 강렬한 주황색 쇼핑백만 봐도 그 품격이 느껴지며, 선명한 빨간색 캔만 봐도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면, 당신은 이미 특정 브랜드의 '색깔'을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.

이처럼 특정 색깔은 때로 이름이나 로고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킵니다.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질문. 한 기업이 특정 '색깔' 자체를 독점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할까요? 오늘은 아주 특별하고 강력한 상표, '색채상표'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.

 

색채상표 이미지

 

1. 원칙: 색채는 '모두의 것'

상표 등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'내 것'과 '남의 것'을 구별하는 힘, 즉 '식별력'입니다. 하지만 '빨간색'이나 '파란색' 같은 단일한 색채는 그 자체만으로는 누구의 것인지 구별해 주는 힘이 없다고 보는 것이 상표법의 기본 원칙입니다.

  • 색채고갈이론: 세상에 존재하는 색깔은 한정되어 있습니다. 만약 특정 기업이 '초록색'을 독점해 버린다면, 다른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더 이상 초록색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. 이처럼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해야 할 색깔을 한 사람에게 독점시키면 산업 발전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.

 

2. 예외: '특별한 의미'를 갖게 된 색채

원칙적으로는 등록이 안 되지만, 예외는 있습니다. 바로 그 색깔이 아주 오랫동안 특정 브랜드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용된 결과, 소비자들이 그 색깔만 보고도 "아! 그 브랜드!"라고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'제2의 의미'를 갖게 된 경우입니다.

이를 법률 용어로 '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'이라고 합니다. 이 식별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업이 상상 이상의 노력을 증명해야 합니다.

  • 입증 자료:
    - 해당 색깔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는가 (장기간의 사용 실적)

    - 해당 색깔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광고를 했는가 (막대한 광고선전비)
    - 소비자들이 정말 그 색깔을 특정 브랜드로 인식하는가 (높은 인지도를 증명하는 설문조사 결과 등)

 

3. 실제 등록 사례

이처럼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색깔을 법적인 권리로 인정받은 브랜드들이 있습니다.

□ 티파니앤코 (Tiffany & Co.): 티파니 블루

'색채상표'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입니다. 티파니는 1845년부터 사용해 온 자신들만의 독특한 하늘색(로빈스 에그 블루)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받았습니다. 중요한 것은, 이 권리가 세상의 모든 하늘색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, '보석, 반지 등이 담긴 상자나 쇼핑백' 등 특정 품목에 한정된다는 점입니다.

□ 에르메스 (Hermès): 에르메스 오렌지

티파니 블루와 함께 색채상표의 양대 산맥으로 꼽힙니다. 에르메스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오렌지색을 '포장 상자, 쇼핑백' 등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상표권을 인정받았습니다. 흥미롭게도, 이 상징적인 색은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. 원래 에르메스의 포장 상자는 크림색이었지만,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당시 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색인 오렌지색 포장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.

□ 그 외 다양한 색채상표들

  • 크리스찬 루부탱 (Christian Louboutin): '하이힐 구두의 밑창에 적용된 빨간색'처럼 색깔과 위치가 결합된 독특한 상표권을 인정받았습니다.
  • 3M: 자사의 메모지 제품 '포스트잇'에 사용되는 '카나리아 옐로우' 색상에 대한 상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.

 

결론적으로, "색깔만으로도 상표가 될 수 있을까?"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"네, 가능합니다. 하지만 정말, 정말 어렵습니다."입니다.

색채상표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.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된 브랜딩과 막대한 투자를 통해,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'나만의 색'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한 브랜드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.

여러분의 눈길을 사로잡는 특정 브랜드의 '색깔'이 있다면,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과 역사가 담겨있을 것입니다.